강릉 :: 회상

2021. 12. 18. 22:26

2021-12-18

 

삼년 전 강릉에서의 기억이 아쉬웠던 만큼 무척 좋았어서 아끼고 아끼다가 연말 기념으로 강릉으로 떠났다.

혜경이와 동서울 고속버스터미널에서 만났는데 영하 11도라 엄청 추울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따듯했다.

세 시간도 안되어 강릉 시외버스터미널에 빠르게 도착했다.

가는 내내 버스에서 푹 잤다.. ( ´¬`)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먹먹해진 귀를 부여잡고 점심을 해결하기 위해 강릉에서 유명한 칼국수 가게로 갔다.

하지만 웨이팅이 무척 길어 포기하고 근처에 '원조 교동 장 칼국수'라는 음식점에 들어갔다.

 

가게에는 강릉 주민들밖에 없어 보였다. 원래 이런 곳이 진정한 맛집이라고 한다.

간이 조금은 셌지만 배가 고파서 맛있게 먹을 수 있었다.

물도 결명자라 개운하게 드링킹했다!

 

아점을 먹고 에어비앤비로 예약한 숙소에 도착했다.

2층 카페에서 체크인을 하고 짐을 풀면서 이것저것 구경을 하기 시작했다.

별 기대를 안 했는데 정말 만족스러운 곳이었다. 청결하기도 했고, 뷰도 끝내주고, 침구도 푹신푹신했다.

 

갈매기들이 흐트러짐 없이 꼿꼿한 자세로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파도가 칠 때마다 한 마리씩 날개를 펴고 힘껏 날아가는 우람찬 모습을 보여주는 갈매기 친구들 ( ・ิ⌣・ิ) ..

 

갈매기 친구들을 바라보다 비둘기가 생각났다.

한때는 평화의 상징이었던 비둘기가 몇 년 사이에 현대 사회에서 유해 동물로 지정되었다.

인간들의 입맛대로 바뀌는 비둘기에 대한 수식어가 오히려 불편했다... ( ´_ノ` )

따지고 보면 지구에게 가장 크게 피해를 준건 인간인데 말이다.

비둘기만 보면 기피하는 현대인들을 보고 비둘기가 불쌍하다고 주변인들에게 입 밖으로 꺼낸 적이 있었다.

하지만 오히려 나를 이상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그 모습에 이제는 속으로만 안쓰럽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몇 달 전 이 영상을 친구한테 보여줬었는데, 영상도 보지 않아 놓고선..

"비둘기는 무조건 해로워"라고 하는 모습을 보고 얄미웠다.😡😡

 

영진해변을 구경하는데 서서히 노을이 지기 시작했다.

 

파도 소리만 들어도 벅차오른다.

갑자기 든 생각인데 어릴 적엔 소라껍데기를 귀에 갖다 대면 바다에 사는 생물과 이야기를 할 수 있을 줄 알았다.

 

먹구름과 노을에 가려진 동그란 달🌕

 

이젠 그 모습을 완전히 드러내 주었다.🌝

고1 때 할아버지 과학쌤과 친구들과 함께 관측소에서 행성을 관측했던 적이 있었다.

그때만 해도 우주의 미지에 관심이 많았었고, 이면지에 그림을 그려가며 친구들한테 설명해주었던 기억이 난다.

우주는 n차원이고, 차원끼리 블랙홀과 화이트홀로 연결되어있다며 열렬히 외치고 다녔었는데 ,,, (민망)

말도 안 되는 소리 들어줘서 고마웠어..ㅎㅎ 잘 지내고 있지..?

 

날씨가 추웠지만 바다가 매우 예뻐서 삼십분 넘게 바다 구경을 했다.

아쉬웠던 건 추워서 바닷물을 만져볼 생각을 못했다.

 

실컷 바다를 구경하고 숙소 근처 오션뷰 카페에서 디저트와 아메리카노를 섭취하며 여유로운 낭만을 즐겼다.

난 카페인의 노예다. 카페인을 섭취하지 않은 날과 섭취한 날의 기력의 편차가 심하다.

 

갑자기 혜경이가 "여기 예쁘다. 찍어줄게." 해서 머쓱하게 포크질 하며 뷰를 감상하는 척 앉았다.

내 모습을 열심히 카메라에 담아주었다.

나도 누군가를 찍어줄 때 인물사진을 잘 찍어주고 싶은데 음식과 풍경과는 달리 그게 잘 안된다.

 

슬슬 저녁 시간이라 조개구이를 먹으러 근처에 리뷰가 좋은 '토박이해물' 가게에 갔다.

많은 리뷰 수와는 달리 손님이 우리밖에 없어 처음에는 당황스러웠지만 날씨 탓에 그런 거라고 한다.

어릴 적 가족여행 때 조개구이를 먹었던 기억밖에 없어 조개를 어떻게 구워 먹어야 하는지 몰랐다.

어떻게 먹어야 하지 어리둥절하다가 가게 아주머니께서 도와주셨다.

아주머니가 매우 친절하게 하나부터 열까지 다 알려주셨다.

 

나의 현란한 손놀림이 보이는가.

아주머니 덕에 조개구이를 잘 구울 수 있게 되었다. 치즈와 조개의 조합은 경이로웠다.

혜경이가 조개구이 탕을 잠시 불 위에 올려놨다가 빼놨는데 아주머니께서 모르고 집어 손을 데이셨다.

마음이 너무 안 좋았고 죄송했다..🥲

 

맛있게 조개구이를 먹고 나와 바라본 깜깜한 바다.

 

숙소에서 먹을 디저트를 사기 위해 주변 카페에 잠시 들렸는데 벽면에 적힌 멘트가 한눈에 보였다.

커피는 악마와 같이 검고
지옥과 같이 뜨거우며
천사와 같이 순수하고
사탕(👄)처럼 달콤하다.

검색해보니 나폴레옹을 정치의 세계로 이끈 19세기 전기 프랑스 작가이자 외교관인 '탈레랑'께서 커피의 유혹을 떨치지 못해 내뱉은 말씀이라고 하신다.

 

숙소로 돌아와 우리끼리 조촐한 홈파티를 즐겼다.

각자 소원도 빌었다.🙏

 

2022년 기념으로 폴라로이드도 찍어주었다.

 

인스탁스 폴라로이드 감성이 매우 좋다.

여기서 궁금한 건 내 폴라로이드는 대체 어디로 사라졌을까..?

 

혜경이가 편의점에 다녀오는 동안 바다에서 누군가 불꽃놀이를 하는 걸 구경했다.

나도 불꽃놀이를 하고 싶었으나 친구의 체력이 방전된 듯싶었다.. o-<-<..

 

폭죽은 내년 1월에 기가단 친구들과 을왕리에서 함께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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